[대전광역시]

우리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대전시 역사명소

· 위치 대전광역시
· 전화 042-120
· 홈페이지 https://daejeontour.co.kr/ko/index.do

계족산성

대전시 장동 계족산(해발420m)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이 산성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8∼99년 발굴을 통해 신라에서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산성의 높이는 약 7∼10m 가량 되며, 동·서·남쪽에 문터를 만들었다. 성 안에서 삼국시대에 만든 큰 우물터가 발견되었고, 성내 건물터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 자기편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쌓기 방법은 보은에 있는 신라 삼년산성(사적 제235호)과 같은 방식으로 쌓았다는 것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고, 출토된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6세기 중·후반의 신라토기임이 밝혀졌다. 이후에 나온 토기 형태도 백제계는 소수이며 다수의 신라계 토기가 보여, 한때 백제가 점령하긴 했지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조사되었다. 계족산성은 새로운 발굴 성과에 의해 신라가 쌓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6세기 중·후반 신라나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덕 역사·문화관광 포털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대덕구 산디로 79-70 (장동) 운영시간 : 09:00 ~ 24:00 지도

회덕향교 대성전

조선초기에 세워진 회덕향교는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1600년 경에 다시 세웠고, 그 후 1812년 가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에 현재의 대전 대덕구는 회덕현으로 편재되어 있었고, 읍내동은 당시 회덕현의 행정적 중심지였다. 

회덕향교는 회덕관아(현 읍내동 회덕1동사무소 옆 공터 자리)에서 북쪽으로 400m 남짓한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중국 5성(五聖 :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의 위패를 중앙에, 송조 4현(주돈이·정호·정이·주희), 한국 18현(설총·최치원·안유·정몽주·김굉필·조광조·이황·이이·송준길·조헌·송시열 등)의 위패를 동서 양쪽 벽에 배향하고 있다. 

대성전에서는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지역 내의 헌관, 제관, 일반유림 등이 모여 석전제(釋奠祭)를 올린다. 명륜당은 정면 5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가운데 세 칸은 대청마루, 양측 각 한 칸은 온돌방이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바로여기! 즐거운 대덕여행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전로1397번안길 126 (읍내동) 운영시간 : 지도

대전 소대헌 · 호연재 고택

대전광역시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고택은 조선후기 성리학자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宋炳夏)가 1674년 분가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여 현재 11대손까지 살고 있는 오래된 집이다. 남달리 이곳이 소대헌·호연재 고택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와 그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 ~ 1722)가 지냈던 탓인데, 호연재 김씨는 조선 후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맹자의 ‘호연지기’에서 따온 자신의 호처럼 당당한 여인의 삶을 살고자 했던 호연재. 대덕구에서는 호연재를 기리기 위해 매년 김호연재 여성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고택을 배경으로 전통의상 체험, 토크 콘서트, 마당극 등 다채로운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바로여기! 즐거운 대덕여행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70 (송촌동) 운영시간 : 지도

송애당

대전 대덕구 중리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김경여가 세운 별당건물로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경주김씨 종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마음에 간직하겠다 ’ 는 뜻으로 , 김경여의 기개와 충성심을 나타낸다. 

정면3칸, 측면2칸의 전통한옥으로 왼쪽2칸은 대청마루이고 오른쪽1칸은 온돌방으로 지었다. 온돌방의 두편은 반침을 만들었고, 그 아래는 함실아궁이로 사용하였다. 네모기둥의 민도리집인 송애당 건물은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1889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덕 역사·문화관광 포털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대덕구 계족산로17번길 60 (중리동) 운영시간 : 지도

쌍청당

쌍청당은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고,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부사정을 지낸 송유의 별당이다. 쌍청당이란 평소 송유와 교분이 두터웠던 박팽년이 지어준 당호인데, 청풍과 명월의 기상을 가슴에 새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쌍청당은 화강암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로 세운 남서향 건물이다. 오른쪽 2칸은 대청이며 왼쪽 1칸은 온돌방이다. 그 북쪽으로 반 칸짜리 달림채를 두고 윗부분은 반침으로, 아래는 함실로 사용하였다. 모두 네모 기둥을 사용하여 직접 붓머리와 도리를 받쳤고 그 밑에 양봉형의 부재로 대들보를 지탱하였다. 

쌍청당은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로 다른 주택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단청이 되어 있어 독특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근처에 남아 있는 이와 비슷한 별당 건축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화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덕 역사·문화관광 포털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대덕구 쌍청당로 17 (중리동) 운영시간 : 11:00 ~ 18:00 지도

둔산선사유적지

대전 광역시 기념물 제 28호인 둔산선사유적지. 이곳은 둔산지구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1991년에 발견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 자리 3기와 신석기시대의 움집자리, 용도를 알 수 없는 구덩이와 빗살무늬토기조각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고 구석기시대의 석기 50여 점도 발견되었다. 

대전지역에서 마을이 이루어지는 단서를 제공한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유적은 이전복원 후에 선사유적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둔산선사유적지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며, 이곳 갑천(甲川) 유역이 얕은 구릉과 넓은 농토,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선사시대부터 많은 인류가 생활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근의 괴정동 청동기유적, 석장리 구석기유적 등과 함께 이 지방의 선사문화의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서구 문화체육관광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서구 대덕대로317번길 9 (월평동) 운영시간 : 지도

도산서원

대전 광역시 기념물 제 28호인 둔산선사유적지. 이곳은 둔산지구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1991년에 발견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 자리 3기와 신석기시대의 움집자리, 용도를 알 수 없는 구덩이와 빗살무늬토기조각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고 구석기시대의 석기 50여 점도 발견되었다. 

대전지역에서 마을이 이루어지는 단서를 제공한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유적은 이전복원 후에 선사유적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둔산선사유적지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며, 이곳 갑천(甲川) 유역이 얕은 구릉과 넓은 농토,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선사시대부터 많은 인류가 생활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근의 괴정동 청동기유적, 석장리 구석기유적 등과 함께 이 지방의 선사문화의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서구 문화체육관광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서구 남선로 8 (탄방동) 운영시간 : 지도

봉소루

대전광역시 중구 석교동에 위치해있는 조선시대 누각이다. 석교동의 봉무산 언덕에 봉소재 남분붕이 강학소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던 유적이다. 봉소루의 명칭은 원래 남분붕의 호에서 취하여 봉소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봉소는 봉황새의 보금자리라는 뜻으로 봉소재는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도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규모는 웃방. 대청. 안방. 부엌이 있는 안채와 서재. 누가 있는 바깥채 2동으로 구성되어있다. 안채는 광복전에, 봉소루는 1970년대 초에 중수하였으나 형태는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대전문화재자료 제 35호로 지정되어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중구문화관광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중구 봉소루로 29 (석교동) 운영시간 : 지도

단재신채호선생생가

독립운동가 신채호의 생가 터로 대전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있다. 생가 입구에 큰 비석이 세워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작은 원두막하나와 오래된 초가집 한 채가 서 있다. 땅의 기운을 받아 위인이 나올만 하게 산들이 생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죽은 8살 때까지 살았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에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8년 대만으로 가던 중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뤼순감옥의 독방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1936년 2월 21일 57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어남동에 있는 단재신채호선생 생가지는 일제강점기에 언론인, 역사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웠던 단재 선생의 얼이 서린 곳이다. 선생은 우리 역사를 고구려 중심으로 계승되는 역사 체계로 다시 세워 우리 역사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만주대륙이 우리 민족의 영토였음을 밝힘으로써, 일제에 의해 만주로 강제 이주된 주민들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중구문화관광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 (어남동) 운영시간 : 지도

창계숭절사

대전 광역시 중구 안영동에 있는 사당으로 박팽년과 박심문을 모신 사당이다. 대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하고 있다. 

박팽년은 단종의 복위를 시도하다 실패하여 고문 끝에 옥에서 죽은 사육신중 한명이고, 박심문은 사육신의 처형소식을 듣고 음독 순절한 사람이다. 

후에 박심문을 포함하여 사칠신이라 불리워지고있는 인물이다. 

높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태극문양의 대문이 있고 이 대문을 지나면 사당이 나오는데 사당을 오르는 3개의 계단길이 있다. 각각 3단형식으로 되어있다. 창계숭절사의 명칭은 숭절사 앞으로 흐르는 유등천의 다른 명칭인 창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원래 정절서원(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박팽년 선생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위패를 모셨으나 고종 8년(1871)에 서원이 헐려, 지금 있는 곳에 다시 사당을 세우고 두 분을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중구문화관광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중구 대둔산로137번길 67 (안영동) 운영시간 : 지도

유회당

영조때 호조 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이 건물 뒤 언덕에 있는 부모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독서·교육을 하기 위해서 1707년(숙종33년)에 보문산 남쪽 무수동에 지은 건물이다. 당 내부의 대청 우측에 구시재 현판이 걸려 있는데 권득기의 십자훈과 권시의 '사필구시' 훈계에서 따온 것이다. 좌측에 불기재 현판이 있고, 1720년에 권이진이 직접 쓴 현판도 걸려 있다.

유회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건물로 활수담이라는 작은 연못 뒤쪽에 있다. 앞면과 양쪽 면에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경내 좌측에 있는 기궁재는 1920년에 중건된 재실건물로서, 자연석 기단과 덤벙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양식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의 오량집이다. 

이곳에는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시묘소인 삼근정사와 선생의 문집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건물 이름인 유회는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자"하는 효심을 의미한다. 건물이 나지막한 언덕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어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건물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유회당은 유형문화재 제 6호로 지정되어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중구문화관광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중구 운남로85번길 32-18 (무수동) 운영시간 : 지도

옛 대전형무소

대전 중촌동 자유회관 옆 오래돼 보이는 망루와 우물. 가슴 아픈 역사가 깃들인 옛 대전형무소의 흔적이다. 옛 대전형무소는 3·1만세운동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수감시설이 부족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19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개설했다.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 도산 안창호, 여운형, 박헌영, 김창숙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연합군에 쫓기던 북한군이 1,300여 명의 양민을 포함한 6,000여 명을 집단 학살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전형무소를 유성구로 이전하면서 남쪽 망루와 우물만 남기고 철거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민족의 비극을 되돌아보기 위해 보존되고 있는 망루와 우물은 역사의 한 자취로써 의미를 가진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중구문화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관광블로그]

위치 : 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 (중촌동) 운영시간 : 지도

고산사 대웅전

대전광역시 동구 대성동에 있는 사찰건축물로 886년(신라 정강왕 원년) 도선국사 창건하고 1636년 수등국사가 중건한 고산사는 조선시대까지 여섯 차례 중건되었어도 대웅전은 옛 형태 그대로 보존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성각, 극락보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 좌측으로 2기의 부도가 있다. 대웅전을 수리할 때 ‘법장산 법장사’라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으로 고산사의 옛 이름이 법장사였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석축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사용하여 동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던 다포식 건물인데 기둥 위에 바로 주두를 놓았다.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축제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동구 대전로316번길 205 (대성동) 운영시간 : 지도

우암사적공원

우암사적공원은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장판각, 전시관, 서원 등 16동의 건물을 복원해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곳은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이 잘 단장되어 있어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로도 제격이다. 

사적공원 내에는 봄, 가을 우암 선생의 제향 봉행이 이루어지는 남간사(南澗祠)와 유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유물관에는 효종이 우암에게 북벌을 당부하며 하사했다는 담비털옷을 비롯해 유품과 장서 등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을 살필 수 있는 것들이 전시되어 선생의 흔적을 쫓아 사적공원을 찾은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축제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가양동) 운영시간 : 05:00 ~ 21:00 ※연중무휴 지도

조선의 정원서재 송시열의 남간정사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조선 성리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공자, 주자와 같이 ‘송자(宋子)’로 존칭될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남간정사는 조선 숙종 때 최고의 학자였던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현재 우암사적공원 입구 옆에 위치한 남간정사는 남향 건물로 정면 4칸·측면 2칸으로 구성된 팔작지붕 집이다. 서쪽 정면 1칸·측면 2칸은 방이며 가운데 정면 2칸·측면 2칸은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동쪽 정면 1칸·측면 2칸 중 뒤는 방이고, 앞은 대청과 연결된 누마루가 있다. 그 앞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인 기국정이 있다. 

남간정사는 독특한 정원을 가지고 있다. 대청 밑으로 계곡물이 흘러 남간정사 앞의 넓은 연못을 형성한다. 연못 주위로 봄에는 벚꽃·진달래 등 꽃 향기가 가득하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눈이 즐겁다.

 

[출처 : 대전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축제 홈페이지]

위치 :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가양동) 운영시간 : 지도